절뚝거리며 가는 야곱에게 해가 떠올랐다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야곱 인생이 저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부상을 입었으나 올림픽 금메달을 딴 사람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겠지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씨름하여 주님 영광을 본 야곱이 누린 기쁨은
세상 그 어떤 영광과도 비할 수 없는 크나큰 영광스러운 기쁨이었을 것 같아요.
절뚝거리며 걸어나가는 챔피언에게 아침 해가 솟아올라 비추었네요.
주님 앞에 씨름하며 문제를 풀어나가는 발걸음을 주님이 축복하시네요.

복의 근원이 되는 삶이 축복이다

요셉은 남을 복되게 하는 사람이지만, 정작 자신은 여전히 고난 중에 살아갑니다. 요셉이 가는 곳마다 주변 사람은 복을 받았지만, 그는 여전히 형들에게 버림받은 자요, 노예로 팔려온 종이요, 죄를 뒤집어쓴 죄수로 살아갑니다.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아브라함에게 주셨을 때, 참 의미가 이 의미였음을 예수님에게서 깨닫게 됩니다. 행복에 집착하여 행복을 소유하려는 자가 아니라, 자신이 어디 가든지 그곳에 행복의 근원이 되는 삶. 그것은 예수님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버림받고, 종처럼 팔려가고, 죄를 뒤집어쓴 죄수로,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사랑을 깊이 알고 싶습니다. 세상을 복되게 하는 구주께서는 세상에서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가셨습니다.
세상을 복되게 하는 사명자는, 세상에서 기꺼이 고난의 골짜기를 통과합니다. 요셉이 내려간 그 길에 복이 있었고, 주님이 가신 그 길에 생명이 있습니다. 나도 그 길을 기쁘게 가는 복의 근원으로 살고 싶습니다.

말씀묵상 2024 0112 창세기 45장. 상처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잊어버리는 것이다.

“상처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잊어버리는 것이다.” 오늘 내 마음에 들어오는 한 문장입니다. 요셉은 자기를 버리고 배신한 형들의 악행을 되씹지 않습니다. 못나고 못된 형들을 손가락질하고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보란 듯이 으스대고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옛 상처를 잊어버린 사람처럼 보입니다. 상처 받은 것을 되돌려주려는 보복자가 아니었습니다. 상처난 형들의 영혼을 치유하고 망가진 형들의 인생을 고치는 치료자로 바뀌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탕자의 아버지의 눈물이 터졌습니다. 그의 마음엔 복수하려는 증오심이 사라졌습니다. 아프고 서운한 슬픔은 망각의 강에 던졌습니다. 그의 눈에는 잃어버린 형들을 되찾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아버지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사랑의 눈물이 렌즈가 되어 형들을 보니 하나님이 찾으시는 잃은 양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피를 부르는 보복자가 아니라, 피 흘리는 치료자가 되었습니다.
요셉의 실루엣 너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보입니다. 상처는 잊어버렸고, 치유와 충만이 왔습니다. 인간의 악행이 그를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세웠습니다. 내 맘으로는 할 수 없는 일, 하나님의 주권이 그를 이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