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증거는 어디에나 있다

희망의 증거는 어디에나 있다. 아무리 평범하고 힘든 삶이라도 희망의 증거는 있다. 아무리 심드렁하고 지루한 삶에도 희망의 증거는 있다. 왜냐하면 아무리 어둡고 황량한 시대에도 하나님은 일하시기 때문이다. 극적인 변화가 안보이는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일하시기 때문이다.
금요기도회에서 지난 6주간 구약성경의 룻기를 살펴보았다. 룻기에는 하나님께서 등장인물들에게 직접 말씀하신 장면이 없다. 꿈이나 환상이 임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지도 않았다. 기도응답이 극적으로 오는 것도 없었다. 그저 평범한 삶, 아니 힘든 삶이 기록되어 있다. 룻기의 주제는 그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일하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재수’라고 말한다. ‘팔자’라고 말한다. ‘우연’이라고 말한다. ‘운’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은 ‘섭리’이다. 하나님의 ‘주권’이다. 하나님의 ‘뜻’이다.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르다. 하나님의 말씀 로마서 8:28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나는 나의 삶에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믿는다. 수천 개의 색종이를 모아서 한 편의 모자이크화를 그려내는 화가처럼,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일상들과 경험들을 모아서 걸작을 만들어가신다. 지금 내가 어떤 퍼즐조각을 그리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걸작을 만드실 것은 분명하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신앙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고난과 역경이 저주이다. 심판이다. 지옥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고난과 역경은 저주가 아니다. 축복이다. 심판이 아니다. 치유이다. 그것은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용광로이다. 우리를 수술해서 병을 고치는 수술이다. 그것은 우리의 구부러진 허리를 펴고 뻣뻣해진 인대를 회복하는 재활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절망은 절망이 아니다. 그것은 희망으로 통하는 비상구이다.

룻이라는 외국 여인이 하나님을 믿으려고, 자기 기반을 떠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여정을 축복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여정을 축복하셔서 참으로 풍성한 구원을 주셨다. 이방인이었고, 남편도 없었고, 자녀도 없었고, 아무도 관심 기울이지 않았던 한 여인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왔을 때 그 파장은 역사를 흔들었다. 하나님은 룻의 믿음과 순종을 통해서 예수님의 가계를 준비하셨다. 룻을 통해 다윗이 태어나고, 다윗을 통해 예수님이 오게 하신 것이었다.

희망의 증거는 어디에나 있다. 극적인 응답과 변화만이 하나님의 방법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평범하고 단조롭고 힘든 상황 가운데에서도 희망의 증거를 남기신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을 것인가이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선택할 때 하나님의 크신 일을 모두가 결국 보리라.

뉴시티교회 오종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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