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는 숫자에 있지 않다

사람들이 1만명 넘는 대형교회나,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초대형교회나, 한국에서 대표라고 하는 목사들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것은, 그것이 기독교대표선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표를 공격해서 이기면 기독교 자체를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형교회나, 초대형교회나, 대형교회의 목사나, 무슨 총회장 목사 같은 사람들을 욕하고 공격하고 비판한다. 대표선수라고 생각되는 사람들 속에 하나님이 없음을보인다면,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가 된다고 이들은 생각한다. 대표선수라고 보이는 교회나 기관들 속에 하나님이 안계신 것을 입증하면, 기독교자체가 필요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다는 자기신념을 확증하기 위한 일환으로서, 주기적으로 기독교 대표선수라고 보이는 교회나 세력을 공격한다.

그러나, 그들은 기독교 대표선수가 아니다. 그들은 기독교의 핵심세력이 아니다. 사람들이 기독교대표라고 생각하는 목사나 교회들이 무너지더라도 아무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숫자로 생각해서 대표라고 보는 것들은 허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허깨비를 이기는 것과 비슷하다. 신앙의 진정한 대표선수들은 숫자를 논하지 않는다. 복음을 깨닫고 복음을 따라 살고 복음의 횃불을 전달하는 대표선수들은 사람들의 눈에띄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진정한 대표선수들을 사람들의 눈에 안보이게 보호하시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크다는 대형교회나 어떤 유명하다는 목사가 비판당하는 것 때문에 비관하지 않는다. 그들은 허상이다. 그들은 허깨비다. 사람들이기독교 대표선수를 잡아서 조지려고 만든 허상이다. 그들이 무너져도 기독교가 무너지진 않는다.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복음의 대표선수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복음의 역사는 계속 이어진다. 파괴하려고 해도 파괴되지 않는다.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표라고 생각하는사람들이 실제론 전혀 대표선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열왕기하 6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람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셔서 엘리사를 못알아보게 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아람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인엘리사를 제거하는 것이 자유확대와 부국강병을 이루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눈뜬 소경처럼 엘리사가 엘리사인 줄 몰라보게 하셨다. 엘리사가 살고 있던 도단을 찾아왔지만, 그곳이 도단일 줄 몰라보게 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20킬로미터 떨어진 사마리아까지 엘리사의 인도를 받아서 간다. 이스라엘 왕에게 포로가 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보호하셨다. 그리고,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에게 요청해서 아람 사람들에게 잔치를 열어준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준다. 마치 친구를 대접하듯 선대한 것이다.

지난 20세기만 해도 미주의 쿠바에서,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서, 아시아의 중국에서, 국가와 사회가 교회를 공격하고 파괴했을 때, 가짜 대표선수들은 와해되었어도, 진정한 복음의 핵심은 강하게 남았다. 오히려 모든 억업과 조롱의 시기 속에서 복음은 수십 배의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복음을 아직 모르는 사람들은 숫자에 집착한다. 숫자에 연연한다. 많으나, 적으나 숫자에 연연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숫자에 연연하지 않으신다. 크나, 작으나 숫자에 연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 앞에는 아무리 큰 숫자도 큰 것이 아니고, 아무리 작은 숫자도 작은 것이 아니다. 워낙 크신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알아가고 있다면, 복음을 알아가고, 그 복음에 반응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대표선수이다. 하나님의 대표선수가 되기 위해서 유명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복음의 핵심세력은 굳이 커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는 복음을 알고, 복음을 깨닫고, 복음을 따라 살고, 복음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드리는 진짜 신앙인들이 곳곳에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역사를 이루신다. 그래서 나는 쓰레기통에서 보석을 찾은 사람마냥 기대하고 기뻐한다.

뉴시티교회 오종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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