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이 정말 재난이 되는 것은 그 재난을 대하는 태도 때문입니다. 예상대로, 매뉴얼대로 대처가 안되는 것이 재난입니다. 재난을 대할 때 우리의 태도가 어떠해야할지를 살펴봅니다.
첫째, 재난을 겪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재난 겪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만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세상은 정상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세상은 죄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죄는 사람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죽음입니다. 결핍입니다. 단절입니다. 소외입니다. 인간이 겪는 육체적 질병과 사회적 단절과 심리적 소외는 죽음의 증상들입니다. 자연재앙도 원래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죄로 말미암아 뒤틀어지고 단절된 결과로 생긴 것입니다. 성경의 로마서는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 (로마서 8:22)”이라고 기록합니다. 자연만물도 인간의 죄 때문에 탄식하며 신음하며 함께 고통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쓰나미가 일어나는 것은 자연이 신음하며 고통하는 모습입니다. 원래는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자연은 사람에게 순종해야 하는데, 사람이 거부함으로써 자연도 사람에게 불순종하는 결과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과 거부 속에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모든 사람들은 자연재해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부터 2700년 전에 살았던 선지자 이사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편 46:3)”. 최근에 일본에서 일어난 상황과 많이 비슷합니다. 우리는 불의의 재난을 만날 때에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 재난 앞에서 겸허해져야 합니다.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창조주 앞에서 피조물된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둘째, 재난 겪는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은 그들을 결코 정죄해선 안됩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선하시고 좋으신 분이십니다. 의인과 악인에게 모두 햇볕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재난이 어떤 사람에게 벌어지는 것은 그 사람이 특별히 더 죄인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3장에서 탑이 무너져 치어죽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죄인이라고 생각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라는 질병에 걸려서 반드시 죽는 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다만, 사고로 죽는다고 해서 더 죄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을 몸을 갖고 삽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는 하나님 앞에서 삶에 대해 판결을 받아야 합니다. 재난을 겪는 사람들을 보고 정죄해선 안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혐오하신 바리새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의 태도는 내적으로는 우리의 죄를 살피고 죄를 멀리하는 회개여야 합니다. 외적으로는 재난 겪는 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셋째, 사람의 잘못으로 생긴 재난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인간의 미숙과 어리석음과 무책임 등으로 빚어진 사태인‘인재’의 책임은 이번 원자력발전소 사태와 같이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재난만난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해야 합니다. 어떤 재난은 분명히 사람의 욕심과 교만 때문에 자초하는 것들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1:15).”“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언 16:18).”사람의 죄에 대한 모든 심판은 2천년 전에 예수께서 다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십자가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큰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재난보다 크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뉴시티교회 오종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