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을 특정정파와 동일시하면 안됩니다

지난 주에는 서울시에서 무상급식의 시행범위와 관련된 투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마음을 부끄럽게 하고, 아프게 하고, 심지어 화나게 한 어떤 일련의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몇몇 교회들에서 노골적으로 특정 진영을 옹호하는 설교를 하고, 문자를 발송한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주말에는 몇몇 대형교회의 목사님들이 기독교인이 중심이 된 극우정당을 만들겠다는 기사도 뉴스에 올라왔습니다. 제가 나누려 하는 이야기는 기독교 교회는 결코 특정 정파의 편을 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메시지는 진보나 보수의 한 편에 몰아서 담아두기에는 그 성격이 다릅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의 신앙은 매우 진보적이면서, 또한 매우 보수적입니다.

어떤 면에서 기독교는 진보적입니다. 약자의 편에 서고, 소외된 이를 돌보고, 가난한 사람과 소수자를 돕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의 정신에 부합합니다. 특히 경제정의에 대한 그리스도 신앙의 메시지는 매우 진보적이기도 합니다. 사유재산을 나누어 돌보고, 7년마다 안식년을 통해서 가난한 사람의 부채를 면제하고, 50년마다 희년 제도를 통해서 토지정의를 이루어 가난이 대물림할 수 없는 제도가 성경에는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성경의 메시지는 매우 보수적인 가치를 갖기도 합니다. 성경은 폭력혁명을 부추기지 않으며, 각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것을 요구합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공적인 권위를 가진 이를 (성경에서는 황제나 왕입니다) 존경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윤리의 측면이나 사회규범의 측면에서 성경의 메시지는 보수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적 윤리에 있어서는 매우 보수적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은 신앙을 진보 진영의 가치와 동일시 한다든지 또는 보수 진영의 가치와 동일시 한다든지 하는 일은 하지 않도록 노력을 많이 해야 합니다. 이것은 기독교는 진보도 보수도 아니고 제3의 길을 만들어내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사안 별로 생각을 해야 합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라는 어떤 사람이 무조건 진보 편을 들거나 무조건 보수 편을 들고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누가 만일 기독교의 가치는 보수 진영의 가치라고 주장한다면, 그는 성경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어느 편을 들게 되면, 그것이 당장에는 대세인 것 같고, 손쉬운 선택이긴 하겠지만, 나중에는 반드시 부메랑처럼 돌아와 칩니다. 예를 들어, 19세기 전반에 독일루터교회가 민족주의적인 극우정당의 편을 들어주었을 때, 그 정당은 히틀러와 나치즘이라는 괴물이 되어버렸고, 교회는 결국 나중에 철저한 회개를 해야 했습니다. 당시에 본회퍼 목사님과 같은 성경적 양심을 지킨 목사님들이 계셨기에 독일교회는 나치즘의 괴물이 사라진 다음에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기독교가 기득권의 편에 서거나 권력자의 편에 설 때에는, 과연 성경적으로 사고하고 있는지 철저하게 살필 때입니다. 권력의 우상이 뱀처럼 꽈리를 틀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합니다. 교회가 권력층에 접근하고 있다면, 교회가 세상의 힘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뉴시티교회 오종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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