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성령 135 제3일

성경과 성령 135 3일 
시편 119.33-48, 창세기 7-9, 시편 11-15

1. 시편 119.33-48

* 기도자는 하나님 말씀의 도를 깨닫고 영혼이 살아나기를 기도한다. 삶의 존귀함은 깨달음에 달려있다. 삶의 경주를 끝까지 달려갈 수 있는 힘을 말씀을 통해 인생의 목적을 깨달을 때 가능해진다.

** 기도자는 하나님 말씀을 깨닫도록 간구한다. 그리하면, 전심으로 준행하며 즐거워하며 할 것이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진리는 날마다 보아도 즐거운 진리이다. 말씀을 깨달을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 말씀을 깨닫지 못할 때는 탐욕으로 살았다. 허탄한 것을 보았다. 비방을 두려워했다. 사람들에게 할 말이 없었다. 수치 당할까봐 걱정했다. 거짓이 입술에 있었다. 말씀을 깨달으니 이로부터 벗어났다.

**** 기도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면서 인생이 달라진다.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된다. 내면이 살아난다. 주를 경외하는 심령이 생긴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인생이 살아난다.

***** 기도자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체험한다. 주님의 구원하심을 체험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주의 인자와 구원이 ‘임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기도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지키기 원한다.

****** 기도자가 하나님의 법칙 안에 살아가기로 할 때 그의 길이 넓어진다. 이것을 ‘자유롭게 걸어간다’고 표현했다. 그는 왕들 앞에서 하나님의 법도와 통치를 증언한다. 요셉, 다니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처럼 왕들 앞에 서서 살아가는 자유함과 당당함을 받는다.

******* 하나님, 이것이 우리의 간구와 고백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성경을 사랑하고 시편으로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성경을 사랑하고 시편으로 기도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묵상하게 노래하게 하소서.

2. 창세기 7-9

창세기 7-9장은 홍수를 다루고 있다. 이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인간이 어려서부터 마음이 악한 것과 부패한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받을 자격이 없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를 싫어한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셔야만 하는 상황에서 자비를 베푸신다.

노아는 이 이야기에서 심판자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 의인으로 세워져가는 존재로 제시된다. 노아는 은혜를 입어서 거룩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게 된다. 그러나 9장 말미에서 보여주듯, 아무리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필요한 죄인이다.

하나님은 죄인에 대해 긍휼을 베푸신다. 하나님은 노아를 기억하신다 (8장 1절). 하나님은 노아에게 은혜 언약을 제시하신다. 즉, 죄로 말미암아 피조세계를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이다. 죄인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주제이다.

홍수가 모든 호흡 있는 존재를 멸하였고, 방주에 들어간 노아와 그 식구들이 살아남았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바뀌지 않았다. 홍수 이후 노아와 그 자녀들은 다시 죄를 짓는다. 그러한 죄인들에게 하나님은 창세기 1장과 거의 유사한 축복을 주신다. 죄인에게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애끓는 사랑을 우리가 다 알 수 있을까!

당대의 의인 노아, 방주를 지어 구원을 전한 위인 노아, 아담과 비견할 만한 신앙의 조상 노아, 위대한 인내와 불굴의 정신을 가진 노아. 이러한 찬사가 무색하게 그의 가정은 역기능적이다. 우리는 부모가 훌륭하면 자녀도 훌륭할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사실은 모두 죄인이다. 훌륭한 부모도 없고, 훌륭한 자녀도 없다. 모두 거듭나야 하고, 모두 은혜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남이 훌륭해보인다면 그것은 아직 그 사람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신약성경은 노아의 홍수 때와 같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도 사람들이 악하고 이기적이고 쾌락적이고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물로 심판하셨지만, 후에는 불로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노아의 홍수 사건은 포악함과 악함과 불신앙과 교만함 등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예고한다.

3. 시편 11-15

시편 11편은 터가 무너질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기초가 무너지는 상황이 될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세상의 터는 무너질지라도 하나님의 터는 무너지지 아니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영한 기초가 되신다. 주님의 터 위에 우리의 집을 건축할 때 우리는 안전하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우리의 집을 건축할 때만 삶이 견고하다. 
인생은 누구나 결국 병듦과 노화와 사별과 상실을 겪게 되어 있다. 질병과 죽음과 이별과 결핍과 슬픔을 피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큰 부자라고 하더라도 이를 피할 수 없으며, 아무리 높은 귀인이라 하더라도 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견고하고 영원한 터가 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일이 닥칠지라도 절망할 필요가 없다. 
노아가 외롭게 오랜 동안 방주를 지을 때보다 홍수 이후에 포도주를 먹고 술에 취해 아들에게 모욕을 당했을 때 더 괴로웠을 것이다. 그는 아들에게 격하게 분노한다. 그는 말할 수 없는 수치심과 분노를 느꼈다. 자신의 삶의 견고한 터로 여겨졌던 아버지로서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다. 경건한 사람으로서의 체면이 무너졌다. 자신감이 실추했다. 그럴 때에 그는 어디로 가야하겠는가? 
하나님은 인생을 통찰하시며 감찰하신다. 하나님의 보좌는 하늘에 있다. 하나님은 의인의 억울한 상황을 살피신다. 하나님은 악함과 폭력을 싫어하신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의로운 일을 좋아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할 때 우리는 주님의 자비를 경험하게 된다. 
주님의 자비하심 안에서 우리는 다시 우리를 세우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노아는 실패했지만, 노아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은 승리하셨다. 노아는 실패한 의인이지만, 예수님은 성공한 의인이시다.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는 절망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부르사 회복하시며 치유하시는 과정 속에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2019. 1. 3. 뉴시티교회 오종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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