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는 정말 가능한가요?” “사람은 정말 변할 수 있나요?” 이런 질문은 많은 사람이 당면한 현실적인 질문입니다. 60세 정도 되신 어떤 신학자가 탄식하면서 “성화는 정말 가능한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말로 사람은 나아질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지요.
일반적으로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합니다. 정말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복음이 없는 관점으로 보면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보아야 합니다. 큰 충격을 겪지 않는한 안 바뀐다고 보는 것이 통례입니다. 심리학도 사람을 못바꾸고, 정신과에서도 사람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사람을 바꾸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사람이 마음에 품은 ‘우상’입니다. 우상이란 사람의 영혼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어떤 사람/사물/대상입니다. 마음의 중심에 무엇이 차지하든지간에 사람은 그것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사람의 마음 중심에, 예를 들어, 돈에 대한 욕심이 들어가면 돈 때문에 그의 의사결정과 선택이 바뀝니다. 사람의 마음 한 중앙에 권력에 대한 욕심이 있으면 그것 때문에 다른 것들을 희생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우상이란 그렇게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이 성화되고 변화되려면 마음 중심에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나는 그의 지으신 백성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받아들여질 수 없는 죄성 가득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무한한 은혜로 신자로 불러주시고 자녀로 거둬주신 그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럴 때에는 우리에게 있는 선한 것들을 신적인 위치로 격상시키지 않게 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선한 것들 (피조물들) – 직업, 전공, 일, 직장, 사업, 성취, 재능, 사랑, 결혼, 가족, 부모, 자녀, 보람, 돈, 지위, 명예, 건강, 외모, 인기, 교회 등 – 을 신적 위치로 격상시키지 않고 삶의 온전한 모습을 그려갈 수 있습니다. 이런 선한 것들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약간의 기쁨과 만족과 행복과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궁극적인 공허는 이것들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우리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나의 존재의미를 나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에서 찾을 때만 인생의 공허와 무의미에서 탈출하게 됩니다. 피조물을 신적 위치에 격상시켜서 우상추구를 하면 그것에 예속되어 지배를 당합니다. 인생을 파괴하고 아프게 하고 불행하게 하여 그 추구하는 것에 종노릇합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은 다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계속해서 인정하면서 살아가면 우리의 삶에 성화가 일어납니다. 변화가 일어납니다. 세살 먹은 아이 아니라, 여든 살 먹은 어른도 변화됩니다. 복음에 능력이 있습니다.
뉴시티교회 오종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