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기준으로 사는 삶

어떤 유명한 가수가 자신의 우월적 힘을 사용하여 미성년자를 여럿 성폭행한 사건이 뉴스에 터져나왔습니다. 경찰조사를 받기 전에 한 말이 “나는 그렇게 부도덕하지 않다”였습니다.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는, 자기가 공중의 비난을 받을 만큼 ‘부도덕하지 않다’는 견해였습니다. 그 사람이 가진 도덕성의 기준은 무엇일까 궁금해졌습니다.
어떤 전직 국회의원이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도작하여 책을 펴냈습니다.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는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책은 표절이라고 비난을 받았고, 재판에서도 그것이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은 표절이나 도작이 아니고 단지 자료의 이용이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그가 가진 양심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궁금해졌습니다.
어떤 저명한 종교지도자들이 판당 몇 백만원의 내기 도박을 했습니다. 판돈을 합하면 억대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말하기를, 이는 그들의 “내기 문화”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분들에게 종교란 무엇일까, 그분들이 가진 수양의 기준은 무엇일까 궁금해졌습니다.
어떤 재벌이 이런 이야기를 1993년에 했다고 합니다: “내 재산 늘리기 위해 이렇게 밤잠 안 자고 떠드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 재산 10배 늘어나야 나에게는 아무 뜻도 없다. 나는 내 자산의 이자의 이자의 이자만 갖고도 5대까지 먹고 살 수 있다. 내 개인의 양심을 지키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며 단지 명성만 남는다. 여러분이 잘 되게, 회사 잘 되게, 나라 잘 되게, 여러분들 자손 잘되라고 하는 일이다.” 그 재벌과 그 가족이 행한 꼼수들과 악행들을 생각할 때 정말로 궁금해집니다. 과연 이분에게 있어서 ‘개인의 양심’과 ‘책임’의 기준은 무엇일까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성경말씀의 기준이 없다면, 사람은 각자 자기 기준에 따라 살게 마련입니다. 구약성경의 사사기 말씀은 지금부터 3200년 전에도 사람들은 자기 나름의 도덕성의 기준으로 살았다고 전합니다. “…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사사기 21:25). 그 결과로 전하는 모습은 매우 참혹합니다. 폭력적인 성관계, 토막살인, 성직자의 부패, 전쟁, 살육, 우상숭배, 사익도모를 위한 종교생활 발흥 등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잠언 16:2). 또 비슷한 말씀으로 이런 것도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잠언 21:2). 자기가 생각할 때는 자기가 좀 괜찮아보여도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회개할 것 뿐입니다. 사람이 죄를 고치려면 죄를 먼저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인정하는 것은 의사 앞에서 병을 인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만물이 초음파촬영을 하듯 드러납니다.
복음을 깨닫고 받아들이기 전에는 변명과 자기방어를 안할 수가 없습니다. 죄와 잘못을 인정한다면 그의 인생 전부를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알고 복음 안에서 살아갈 때는 달라집니다. 복음의 기준으로 다시 생각하고, 복음의 기준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바른 기준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그 기준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과 능력을 제시합니다.

뉴시티교회 오종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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