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약함’이 아니라 ‘악함’입니다

인간의 문제는 ‘약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악함’에 있습니다. 사람이 약한 것이 문제라면, 그 해답은 강해지는 것이 됩니다. 자기를 개발하고 단점은 최소화하고 장점은 극대화하는 것이 방법이 될 겁니다. 그리고 강한 자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해답이 될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은 자기를 개발하기도 하고 인맥을 넓히기도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신앙을 이해한다면, 하나님이란 존재는 강하고 능력이 있으면서 동시에 내 소원을 들어주는 마음씨 좋은 램프의 거인 요정으로 둔갑하게 됩니다. 신앙을 이런 관점에서 대하면 기독교 신앙은 문제해결의 방편으로 축소되고 맙니다. 자신이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입장에서는 기독교는 나약한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이라고 치부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신앙을 갖는 것은 단순히 인간이 약한 존재라서가 아닙니다. 사람의 진짜 문제는 ‘악함’에 있습니다. 약함이 증상으로 드러나는 것이라면 악함은 원인입니다. 사람들 중에 강한 사람도 있고 약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그 안에 악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구약성경에는 기원전 2700년 전에 살았던 이사야라는 선지자의 글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이었고 이스라엘의 도덕적, 영적 회개를 촉구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 “나는 입술이 부정한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뿐만 아니라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탄식까지 합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흠이 없을 정도로 높은 도덕적 수준의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없는 죄들이 보였던 것이지요. 그는 고백하기를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의로움조차도 하나님 앞에서는 거지 발싸개같이 낡고 냄새나는 누더기라고 고백합니다.

신약성경에서는 대표적으로 베드로라는 분이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의 고백은 “주님 나를 떠나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였습니다. 밤새도록 수고하고 애썼는데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쁨의 노래 대신에 자신의 악과 죄에 대해 비탄에 빠집니다

이러한 깨달음과 인정이 진정한 변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약함이 문제라면 강해지기만 하면 되지만, 악함이 문제이기에 변화는 그 악과 죄를 깨닫고 인정할 때 일어나게 됩니다. 약한 사람이나 강한 사람이나 모두 하나님께 회개와 믿음으로 나아올 때 변화와 회복은 현실이 됩니다.

뉴시티교회 오종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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