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 처음에는 졸졸 흐른다

우리나라는 이름부터가 “대”한민국이다. 한강에 웬만한 다리 이름은 ‘대교’이다. 큰 것을 숭상하고 대규모의 일을 추진하기를 좋아한다. 고등학교 졸업한 후에 가는 학교도 ‘대학’이라고 이름했다. 일단 규모와 물량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문화는 ‘최고’, ‘최초’, ‘최대’로 무엇을 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최고의 아파트, 최초의 업적, 최대 규모 등이 계속해서 나온다. 어디에서 ‘제일’ 가는 것을 무척 대단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한국의 최고/최초/최대 지향성은 한국의 산업화나 민주화에 많은 공헌을 했음에 틀림 없다.

구약성경의 스가랴 4:10는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하는 말씀이 나온다.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이제는 단순한 빈곤과 무학의 문제는 아니다. 최고/최초/최대를 지향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규모는 커야 하고, 속도는 빨라야 하는 것이 무조건이 된 것이 문제다. 나중에 크고 중요해 보이는 일들도 처음에는 작고 사소해 보이는 것들에서 시작한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이 능력이다. 하루하루는 어찌보면 재미가 없다. 거대한 문명 속에서 인간의 존재는 미미해 보인다. 일상은 반복적이다. 매주가 반복적이다. 때로는 목표마저 상실하고 그저 감내하는 것이 인생처럼 보인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하나님은 물으신다. 오늘이 작다고, 내가 작다고, 오늘 내가 하는 일이 작다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선지자 에스겔은 생명수의 강을 환상 속에서 보았다. 온천하를 치유하며 소생케 하는 생명수의 강은 어디에서 발원하였나? 그것은 성전이었다. 하나님을 만나는 성전! 죄를 고백하고 제사하고 씻음받는 성전!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하나님이 영적으로 실제적으로 임재하시는 성전이었다! 그리고 그 생수는 졸졸 흐르는 작은 물줄기였다. 처음에는 존재 자체가 겨우 확인되는 작고 미미하고, 있는 듯 없는 듯 보이는 그 생수가 나중에 모든 나라를 치유하는 생명수의 강이 된다. 어찌나 작았던지 처음에는 겨우 발목에 잠기는 개울과 같다가, 조금 지나니 무릎까지 잠기는 실개천으로 커진다. 그러다가 나중에 보면 허리까지 잠기는 작은 강줄기가 되고, 나중에는 사람이 지나갈 수 없는 큰 강이 되어 흐른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지으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아감에 있어서 작은 일들을 무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루 15분씩만 하나님께 시간을 내어도 1년이면 91시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된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우리의 매주의 예배, 성경공부, 매일의 개인경건의 시간들을 멸시하지 않았으면 한다. 하나님을 소중히, 작은 일의 날을 소중히!

뉴시티교회 오종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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