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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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도적 예배의 토대 만들기

[개척목사가 쓰는 복음적 교회개척론] 시리즈
작성자
newcity church newcity church
작성일
2018-10-13 22:17
조회
1361
[개척목사가 쓰는 복음적 교회개척론] 시리즈 - 목회와신학 2015년 4월호

개척목사가 쓰는 복음적 교회개척론: 전도적 예배의 토대 만들기

오종향 목사 (뉴시티교회 개척 담임, 서울 서초동)


1. 전도적 예배를 실현하는 교회개척

전도적 교회개척을 할 때에 전도적 예배를 만들어야 한다. 전도적 예배란, 교회밖 비신자들이 교회안 신자들의 초대를 통해 예배에 찾아서 기독교를 탐색하고, 질문을 해결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일어나는 예배이다. 단순히 전도집회로 모이는 특별 집회가 아니라, 매주매주 비신자가 찾아와 일상적으로 전도가 일어날 수 있는 성격을 띠는 예배를 말한다.

필자는 노방전도를 하는 목회자들에게 노방전도를 통해서 몇 명이 신자가 되었느냐고 물어보곤 한다. 그리고 그 중에 제자의 삶을 사는 신자들은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본다. 대답은 대부분 별로 효과 없다는 말이 돌아온다. 노방전도를 열심히 나가는데, 정작 예배는 안나온다. 방과후 학교나 어린이 영어프로그램 등을 열어서 전도의 기회를 여는데도, 정작 예배에는 안나오는 게 현실이다. 단순히 전도에 도움이 되겠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안된다. 실제로 전도가 일어나야 한다. 그 사람들이 그냥 교회를 다니는 것으로 그치면 소용이 없고, 복음을 경험하고 삶에서 구원을 경험함으로써 주변 사람에게 복음을 소개하고 싶어하는 열정이 생겨야 소용이 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누군가를 예배에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전도적 예배가 가능해지기 시작한다. 비신자가 예배와 모임에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회심은 번개 맞는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작은 결정들이 쌓이는 지속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루터도 친구가 번개를 맞아서 죽는 것을 볼 때 회심한 것이 아니었다. 루터가 회심하기까지 숱한 작은 깨달음과 작은 결단이 누적되는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에게 인생의 위기나 역경이 신앙의 기회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그렇다고 그 순간이 전부가 아님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해 찾게 되고, 마음에 하나님을 받아들이게 되고, 성경을 읽어보게 되고, 믿음의 타당성을 실험해 보고, 한 걸음씩 두 걸음씩 예수님 앞으로 가까이 가는 과정들이 쌓여서 회심한다. 그렇다면, 목사가 전도한다는 것은 사영리를 외치고 결신시키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지속적으로 만나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들이 있는 영적, 사회적, 심리적 자리에서 복음을 가지고 갈 때 그들의 회심 과정에 도움을 주게 된다. 성령께서 사람들을 불러 구원하시는 사역에 우리가 도구로 쓰임을 받는다. 전도자는 그들의 고통과 슬픔과 아픔과 고민과 꿈과 열망이 있는 그 지점에 찾아가 사람들을 만나서 복음을 이야기하고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이다.


2. 비신자들을 찾아가서 만나는 목사

신자들이 교회 예배에 찾아 오기 전에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세 가지 있다. 그 한 가지가 비신자들을 목사가 찾아가서 교회 바깥에서 만나서 대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이다. 우리는 대개 신자들이 비신자인 지인들을 교회 예배에 데려오면 그 다음에 어떻게 환영하고 심방 하고 새가족반을 할 것인지를 생각한다. 그렇지만 교인들이 그들의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나 지인들을 교회예배로 데려오기 전에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목회자가 그들을 찾아가서 만나는 것이다.

현대도시와 같이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크고, 이웃대한 불신이 큰 사회에서는 신뢰하는 사람을 통한 소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신의 인생의 질문과 평생과 영생이 걸린 종교문제를 다룸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지금 우리의 도시환경은 길거리에서 만나는 행상에게 고가의 물건을 사지 않으려 한다. 그만큼 타인에 대한 거리감이 있다. 그만큼 상호 신뢰가 안되는 환경이다. 이것은 도시 자체가 전통사회의 기반에서 뿌리뽑힌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이동성이 크고 사회적 연대가 느슨한 곳이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목회자가 사람들을 만나서 관계를 형성하고 대화하며 복음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노방전도나 축호전도보다는 관계 전도, 우정 전도가 맞다. 이것은 초대교회 3백년의 주된 전도 방식이었을 뿐만 아니라, 회심의 본질적 성격에도 부합한다.

뉴욕 맨하탄에서 리디머교회를 개척하여 비신자들을 많이 전도한 팀 켈러 목사는 개척 초창기에 매주 25-30명을 만나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커피숍에서 쫒겨날 때까지 사람들을 계속 만났다고 한다. 그 과정을 통해서 비신자들의 마음의 질문과 고민과 생각들을 생생하게 알게 되었다고 팀 켈러는 말한다. 이러한 경청을 통해서 그의 교회는 뉴욕의 역사를 바꾸는 회심부흥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다. 맨하탄에서 복음주의적 신앙을 고백하는 신자는 80년대 후반에 0.5%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3.5% 이상으로 무려 일곱 배 이상 증가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리디머교회의 복음사역 및 교회개척운동의 결과로 보고 있다.

필자의 경우는 뉴시티교회를 개척하면서 소개팅 전도를 하고 있다. 교우들이 지인을 목회자에게 소개해준다. 교우들의 부모, 자녀, 가족, 친구, 동료들 중에서 복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소개받아서 만나는 것이다. 중대 질환이나 여러 종류의 인생 위기에 처한 사람들도 소개 받고, 인생의 의미와 진리에 대한 질문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소개팅 하듯이 만나서 대화를 나눈다. 결국 그들의 인생에 대한 질문, 하나님에 대한 궁금함, 기독교에 대한 호기심 등 무엇이나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복음이 제시하는 답을 나눈다. 한번의 만남은 지속적인 만남으로 이어진다. 결국 다섯 번, 열 번, 스무 번 만남이 계속되면서, 그들이 인생 가운데 찾는 것이 예수님의 복음 안에서 찾을 수 있음을 제시한다. 그들이 자신의 고통이나 문제에 대해 갖는 질문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믿을 때 어떻게 해결되는지를 제시한다. 작년에도 이런 과정으로 열 명 이상과 꾸준히 만났고, 이 과정을 통해 전도와 회심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3. 비신자들이 만나서 대화하고 싶은 목사

목회자들이 노방전도로 사람을 만나면 사실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 목회자에 대한 신뢰 관계가 쉽사리 형성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나, 목회자를 신뢰하는 성도를 통해 소개받는 경우에는 신뢰형성이 일단 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만남을 지속하여 가면서, 그분들의 이야기와 질문에 대해 성경의 복음으로 반응하면서 그들이 가진 질문과 문제들이 복음으로 해결될 때 결과적으로 전도가 일어난다.

성공적인 교회개척학교들에서는 목회자들이 목회실에 갇혀 살아서는 안된다고 가르친다. 직접 사람들을 만나서 관계전도를 하도록 훈련한다. 필자의 경우는 지금의 장소로 교회처소를 옮기면서 아예 목회실을 없앴다. 필자는 교회당 건물에서도 사람들을 만나지만, 사람들의 직장 근처 커피숍에 찾아가서 계속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매주 또는 격주로 복음밴드라고 부르는 일대일 또는 두세 명이 함께 모여서 복음을 배우는 시간을 가진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지금 함께 하는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만나게 되었다.

목회자들이 예배를 많이 열고 (주일저녁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특별새벽기도 등) 설교를 잘 준비하면 자연스럽게 전도가 된다고 생각했다가 낭패를 보는 분들이 많다. 몇 명이 오지도 않는데, 충성되게 설교를 준비한다. 그러나, 정작 주중 예배에 오는 소수의 사람들은 전도의 열매도 없고, 목사는 교회 밖 비교인들을 만날 기회를 흘려보낸다. 그러나, 그 소수의 사람들이 전도하고 싶은 부모님, 자녀, 형제자매, 친척, 친구, 동료 등을 한 명씩 소개받아서 같이 만나서 복음적 대화를 나누면 그것이 곧 전도가 된다. 그들이 주일예배에 오면 함께 예배드리는 숫자가 늘어난다. 그런데, 너무나 기성교회 모델에 갇혀서 비교인들을 찾아가 만나지 않을 때, 주님이 주신 시간과 신학과 건강과 열정과 기회의 다섯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는 우가 되지는 않을지 생각해야 한다.

아직 교회에 오지 않은 비신자들, 특히 교인인 사람들이 소개해주는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영혼 깊이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복음의 길을 잘 제시하면, 목사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마음을 알고 이해하는 데서 오는 힘이다. 목회자가 비신자들을 소개로 만나서 자주 이야기하고, 또 교인들을 1-3명 정도의 소규모로 정기적으로 만나서 성경공부를 하는 것은 큰 유익이 있다. 그것은 6-10명이 모여서는 나오지 않는 속에 있는 질문과 고민과 마음을 알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비신자들의 신앙에 대한 질문과 고민을 그들의 언어로 우리가 표현할 수 있을 때 목회자에 대한 비신자들의 신뢰가 커진다. 우리가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되기 때문이다. 뉴시티교회는 그런 면에서 올해 세 명의 교역자가 1-3명이 모이는 복음밴드 (성경공부모임)를 35개 이상 진행하고 있다. 10살 어린이부터 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연령대를 대상으로 복음밴드를 하면서 목회자들의 복음 이해와 비신자 및 신자들의 인생의 고민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고 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복음밴드를 계속 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드린다.


4. 비신자들의 질문을 해결해 주는 설교

설교가 본문과 현실 사이의 다리 잇기라고 존 스토트는 말한 바 있는데, 목회자가 설교 외에 개인적인 만남들을 정기적으로 가지면서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질문과 고민과 아픔과 문제를 그들의 언어로 들을 때 그것은 우리에게 현실에 대한 깨달음을 준다. 예를 들어, 필자는 매년 12 개 이상의 소규모 성경공부 (복음밴드)를 지난 3년간 진행해 왔는데, 그 과정에서 같은 본문을 보더라도 동일한 반응은 단 한번도 없었다. 6-10명의 소그룹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개별적인 반응들이 나왔다. 자신이 궁금한 것, 어려운 것, 이해가 안되는 것, 답답한 것 등이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목회자인 나는 사람들이 가진 문제 이면의 문제가 무엇일지를 성령님께 속으로 물으면서 복음밴드를 진행했다. 그리고 전도적 만남/모임의 경우는 그들이 가진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신앙에 오해, 그리고 신앙을 가지고 싶어하는 내적인 부분들과 신앙을 거부하는 내적인 부분들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설교의 다리잇기에 아주 유용한 통찰이 되었다.

비신자들의 마음에 와닿는 설교와 예배가 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구도자 (찾는 이) 예배와는 다른 면이 있다. 구도자가 편하게 느끼는 예배가 아니고, 미디어를 많이 쓰는 형태도 아니다. 비신자들이 가진 질문들을 풀어주는 설교를 매주 하려고 하는 것이다. 매주 비신자들이 회중석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고 있다는 전제를 하고 설교를 준비한다. 교인들이 비신자인 부모나 형제나 자녀나 친구나 동료를 예배에 데려온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왔을 때 그들이 찾던 인생의 질문은 복음 속에서 찾을 수 있도록 선포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주 복음을 새롭게 듣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모든 본문, 모든 주제 가운데 은혜의 복음을 드러내고 믿음으로 이끄는 것이 목적이다. 신자에게는 교육이 되고, 비신자에게는 전도가 되는 설교를 하려고 한다. 비신자들은 자신이 고민하는 내용, 자신이 찾던 내용을 목사의 입을 통해서 정확하게 듣게 될 때, 목사가 자신을 이해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거기에서 공감이 일어나야만 복음으로 그들의 세계관을 도전하고 믿음으로 오도록 권유할 때 반응이 일어난다. 공감만 있고 도전이 유효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신과 변화가 없고, 도전만 있고 공감이 없으면 불쾌하고 거리감을 느낀다.

설교자가 제시하는 성경과 복음의 해법이 비신자의 입장에서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그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이 공감이 되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신앙 속에 답이 있다는 기대와 소망이 생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매주, 또는 자주 예배에 올 수 있게 된다. 필자로서는, 이 부분은 리디머교회의 팀 켈러 목사에게서 듣고 배웠는데, 실행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그렇게 복음을 설득력있고 능력있게 소통한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교회가 이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목사의 설교가 귓등에 떨어져 미끌어지는 것이 아니라 귓속으로 들어가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결코 복음 메시지를 타협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비신자들이 복음적 신앙에 대해 가지는 마음의 장애물들이 무엇인지 알아가면서 해결해가는 것이다.


5. 교인들이 비신자를 데려오고 싶은 예배

전도적 교회개척의 관건은 교인들 또는 개척멤버들이 생각하기에 비신자인 가족이나 지인들을 교회예배나 모임에 데려왔을 때, 그들이 불편하지 않고, 신앙을 가지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는 것이다. 비신자인 가족이나 친구가 왔을 때 당황하거나 무안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교인이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목사님을 계속 만나서 배우면 분명히 가족과 지인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겨야 한다. 이것이 되려면, 비신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교회나 예배에 대해서 어떤 두려움이 있는지 목회자가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이루어지려면, 목회자가 비신자들, 비교인들을 찾아가서 만나고 대화해야 한다. 몇 주, 몇 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한두 명을 계속 만나면서 복음을 나누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누리도록 도와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전도적 예배의 토대가 가능해진다.

필자는 교우들에게 전도가 부담스러운 것이 되지 않고 전도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기를 바란다. 전도가 특별행사가 되지 않고 일상적 예배가 곧 전도적 예배가 되는 것이 성경적 전도와 예배라고 믿는다. 그래서 태신자 작성, 전도집회, 새생명축제, 노방전도팀 운영, 축호 전도 등을 하지 않았다. 이것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는 오히려 관계전도가 더 맞다고 믿는 것이다. 대신에 성도들과 일대일로 1:2-3으로 만나고, 성도들이 소개해주는 사람들을 계속해 만나는 사역을 하고 있다. 어리석은 방법 같지만, 이런 전도로 사람들이 한 명 한 명와서 교회를 이루고 있다. 처음에 우리 부부 외에 두 명이 함께 시작했는데, 현재 필자의 교회에는 매주 80명 정도의 장년이 출석하고 있고, 유효 장년 재적은 120 정도, 그리고 타지방과 해외 등으로 이주했지만 계속 설교를 청취하거나 방문하는 교우들까지 약 150명 정도의 장년들이 있다. 뉴시티교회 예배에는, 큰 교회가 아님에도, 거의 매주 새로운 방문자가 온다. 그들 중에는 신앙심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있고, 장기간 냉담자도 있고, 교회에 처음 오는 사람들도 있다. 대략 삼분의 일 정도가 항상 새신자였다. 교우들이 계속해서 누군가를 초청해서 왔다는 것이다. 설립예배, 이전예배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상적인 주일예배를 한 번 이상 참석한 사람들의 명단이 지난 5년간 750 명을 넘는다. 필자가 많이 부족한 탓에 그분들이 다 신자가 되거나 다 교인이 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계속 교우들이 가족이나 지인을 한 사람, 한 사람씩 예배로 데려오고, 목사와의 만남을 주선해 준 것이다.

결국, 앞에서 2, 3, 4가 이루어지면 5가 이루어진다. 성도들이 먼저 목회자를 신뢰해야 하는데, 그 중에 가장 결정적인 것은, 우리 목회자를 만나면 복음을 들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는 것이다. 결국 개척교회의 관건은 최초로 모인 개척멤버들의 내면에 복음이 새롭게 들어가는 것이고, 그래서 그들의 삶이 달라지는 것이다. 내가 복음을 받아서 믿었을 때, 내가 더 행복해졌다고 고백이 나오기 시작하면, 전도는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초대교회의 전도도 그러했다고 역사의 사료들은 전한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신앙의 의문들을 해결해주고, 어떻게 신앙을 가질 수 있는지 잘 도와주는 목회자가 되는 것이 우리의 지속적인 목표이며 지속적인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