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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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교회 개척 사역에 대한 옹호

[개척목사가 쓰는 복음적 교회개척론] 시리즈
작성자
newcity church newcity church
작성일
2018-10-13 22:26
조회
1317
[개척목사가 쓰는 복음적 교회개척론] 시리즈 - 목회와신학 2015년 7월호

교회 개척 사역에 대한 옹호

오종향 목사 (뉴시티교회 개척 담임, 서울 서초동)


1. 질문: “과연 새로운 교회 개척이 필요한가? 그리고 가능한가?

필자가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고 있는 서울 서초구에는 2004년 285개의 교회가 있었다. 그런데 2014년에 172개로 줄어들었다. 113개가 사라졌는데,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든지, 교회 문을 닫았든지 간에 교회 수가 60%로 줄어든 것이다. 반면 서초구에는 사랑의교회, 온누리교회 양재성전 등 초대형교회들이 포진하고 있고, 남서울교회, 신반포교회, 높은뜻푸른교회 등 수천 명 이상 회집하는 교회들이 제법 많이 있다. 게다가 강남대로 너머 강남구로 넘어가면 소망교회, 광림교회, 순복음강남교회 등 대형교회들이 즐비하다. 과연 여기에도 교회가 필요한가?

“대형교회들이 많이 있고, 사람들이 거기로 다 가는데, 과연 교회 개척이 될 것인가? 지금은 전도가 안되는 시대이다. 그나마 대형 교회들이 버티고 있는데, 그 사이에서 과연 전도 개척이 될 것인가?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닌가?”

필자가 2010년도에 강남역 주변에서 전도적 교회개척을 시작할 때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 물었고, 많은 분들이 의아해했다.

“과연 아무 개척팀도 없이 어떻게 교회를 개척할 수 있는가? 강남 지역은 임대료가 비싼데 과연 유지를 할 수 있나? 이 지역에 또 하나의 교회가 과연 필요한가? 잘 하는 기존교회로 가면 되지 왜 새로운 교회가 필요한가?”

이 질문들에 대해서 개척자가 명확하게 답을 제시할 수 없다면 그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적어도 내가 훈련받았던 리디머 시티투시티 (Redeemer City to City)에서는 그렇게 개척후보생들을 가르쳤다. 리디머교회는 50개 도시에서 350개의 독립적인 교회개척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첫 번째 질문 중에 하나는 이것이었다: “왜 그 지역에 새로운 교회가 필요합니까?”

그렇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야말로 성도들이나 비신자들, 지역주민들이 진정으로 듣고 싶은 답이다. 반면, 일반적인 많은 개척 후보생들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답을 한다.

- 건강한 교회를 하고 싶다

- 대안적인 교회를 하고 싶다

- 선교적인 교회를 하고 싶다

- 신학적으로 올바른 교회를 하고 싶다

- 미래를 여는 교회를 하고 싶다

이 부분들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면 좋은 덕목에 대한 묘사들이지, 사실상 듣는 사람들에게는 그 내용이 공허한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결정적으로, 이미 기존의 교회들도 다 그런 모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답변이 돌아와야 할까? 필자가 교회개척훈련을 받으면서 내린 결론은 “바깥에서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오는 교회”이다. 울타리 바깥에 있는 양들이 울타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교회이다. 예수님 바깥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교회이다. 복음을 모르던 사람들이 복음을 알아갈 수 있는 교회이다. 교회를 안다니던 사람들이 새로 신앙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는 교회이다. 그럼 이것이 현실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2.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을 위해 교회가 더 필요하다

교회 밖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인구통계와 각종 서베이를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10년 전에 개신교에 속한 한국인은 861만명었다. 그런데 최소 758만 명 정도가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며, 이중 약 198만 명은 타종교로 전환했고, 약 560만 명은 비종교인이 었다. 한국 교회의 전도는 대부분 교회에 데려와서 앉혀놓거나 교회등록을 하게 하는 전도였기 때문에, 그만큼 개신교회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도 많았고, 나간 사람들도 못지않게 많았다. 교회 밖에는 적어도 4천만 명이 넘는 비그리스도인들이있으며, 2천만 명이 넘는 비종교인이 있다. 또한 1천만 명 가까운, 전에는 교회에 다녔으나 지금은 발길을 끊은 탈교회인들이 있다.

개척자에게 이것은 큰 기회이다. 왜냐하면 지금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80%가 넘는 것이다. 결국 이슈는 큰 그림으로 볼 때 주님의 우주적 교회 안에서 이 교회당에서 저 교회당으로 흩어진 양이 모이는 ‘내부이동’ 교회개척이 아니라, 바깥에서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오는 전도적’ 교회개척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나 절대자나 신앙에 관심이 있다. 다만 그것을 이야기할 사람을 만나지 못하며, 믿고 배울 사람을 찾지 못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한걸음씩 움직여볼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다.

뉴시티교회를 개척하면서 ‘좋은 교회를 찾는 목마른 교인들’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교회를 안다니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는 교회를 개척하자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울타리에 들지 아니한 양들”에 대해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선교명령은 경계선을 넘어가서 양들을 구출해오는 사역이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교회를 하기 원했다. 복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복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교회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사도 바울과 초대교회가 헌신한 것이었다.

만일 이미 교인들인 사람들을 위한 교회를 개척한다면, 혹시 빠른 시일 안에 사람들을 모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아니라, 특정 교회조직의 확장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복음의 초점을 벗어나면서 점점더 자기중심적이고 내향적인 폐쇄집단화, 친목집단화 되는 오류에 다시금 빠지는 첩경이다. 개척자들은 기존 신도들을 모아서 교회를 세우려고 하지말고, 직접 비신자들을 전도하고 그들을 교회의 개척멤버로 세울 생각을 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교회가 생기면, 그만큼 새로운 신자들이 많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교회에 동참하는 기존교인들은 복음전도의 기쁨을 함께 맛볼 수 있어야 한다.


3. 전도와 제자도에 있어서 새로운 교회들이 훨씬 효과적이다

새롭고 작은 교회들이 전도에 있어서 훨씬 효과적이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는 교회가 많은 편이고, 특히 준대형, 초대형 교회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대형교회들을 보면 예배에 사람이 많이 모이고, 세례식 때는 몇 십 명씩, 몇 백 명씩 세례를 준다. 그래서 전도가 잘된다고 사람들이 생각한다. 그러한 대형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은 나름대로 교회가 전도와 선교 등의 사명을 잘 감당한다는 만족감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착시현상이다.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한국에서 전도를 잘하며 예배가 부흥하며 설교가 좋으며 평판이 좋은 교회들 가운데 매년 장년 신자를 세례 주는 비율은 2% 정도가 된다. 이는 유아세례와 입교를 제외하고 성인들 중에서 세례를 받는 비율이다. 예컨대, 1만명 모이는 교회에서 1년에 200명의 성인에게 세례를 준다면 출석 대비 2%의 세례율이라고 볼 수 있다. 5만명 모이는 초대형 교회에서 1년에 1천 명 성인세례를 주는 비율이다. 1천 명이라고 하면, 상당히 많아 보이고, 게다가 그 예배에 출석하는 교인 입장에서는 세례 명단이 길어보일 것이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라. 100명 모이는 교회에서 2명 세례주는 것과 같은 비율이고, 50명 모이는 교회에서 1년에 한 명을 전도해서 세례를 주는 비율이다.

충격적이지 않은가! 중대형교회에서 수백 명은 대단해 보이지만, 작은 교회에서 한두 명 전도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성인 것이다. 수많은 목사, 성도, 재정, 노력이 투입되는 중대형 교회의 화려한 전도집회가 소박하게 전도하는 작은 개척들보다 비효율적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다만 숫자와 화려함의 착시현상이 있을 뿐이다! 수천 명, 수만 명 모이는 교회에서 수십명 수백 명 세례 주는 것은 마치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한 달란트를 남기는 것과 비슷하다. 매우 무능한 교회인데, 전도좀 하는 교회로 목사와 교인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등록교인들은 들어오고 있고, 새가족반이 분주하니 말이다. 그것이 한국교회의 어지간한 규모의 교회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서운 영적 착시현상이다. 그리고 작은 교회들에서는 큰 교회 때문에 전도가 안된다고 책임전가를 한다. 이 또한 무서운 직무유기일 수 있다. 물론 한 영혼이 구원되는 것은 온천하를 얻는 것만큼이나 귀한 일이지만, 여기서 요점은 대형교회가 전도에 있어서 더 효과적이라고 하는 어떤 사람들의 믿음이 착시현상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새로운 교회는 복음적으로 사역을 한다면 전도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이다. 미국의 교회개척기구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10년 미만의 젊은 교회들은 20년 이상 된 교회들에 비해서 10-15배 전도에 효과적이다. 그래서 피터 와그나 같은 선교학자나 팀 켈러 같은 목회자들은 (신학적 스펙트럼의 상이에도 불구하고) “해 아래 가장 효과적인 전도방법은 교회개척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알랜 크레이더는 초대교회가 첫 삼백년 동안 10년마다 40%의 성장을 했다고 보고한다. 로드니 스타크의 연구결과도 초대교회가 해다마 3% 정도의 성장을 했다고 본다. 어떤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폭발적인 성장이 아니라 점진적인 성장이었다. 그리고 중형, 대형교회를 통한 성장이 아니라, 크지 않은 교회들을 통한 성장이었다. 유명 설교자나 능력 있는 목회자를 통한 성장이 아니라, 이름 없고 평범한 교인들이 생활 속에서 복음을 나눈 결과 신자들이 늘었다. 건물 중심이 아니라, 만남 중심이었다. 프로그램 중심이 아니라 관계 중심이었다. 제도 중심이 아니라, 진리 중심이었다. 조직으로 전도한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 교인들이 복음을 경험하고 변화된 삶이 곧 전도였다. 그리고, 모든 도시에 복음이 전파되고 회심자들이 생기는 곳마다 예배와 배움과 삶을 함께 하는 교회들이 생겨났다. 마지막으로, 우호적인 상황에서의 성장이 아니라, 복음과 교회에 대해 적대적인 환경에서의 초자연적인 성장이었다.


4. 교회개척은 복음의 능력을 체험할 절호의 기회이다

호황 때에는 옥석이 가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불황이 오면 기본기가 탄탄하고 핵심역량에 헌신한 기업이 살아남는다. 대세 상승기에는 누구나 돈을 번다. 그러나 폭락기에는 진정한 실력과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돈을 번다. 태평성대에는 누구나 능력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위기의 시대가 오면 진정한 능력자가 누구인지 드러난다. 복음은 능력이다. 하나님의 능력이다. 믿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다. 복음 곧 은혜의 말씀을 깨닫는 날부터 열매가 맺힌다. 주님은 복음을 주시면서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다. 우리가 복음을 재발견하는 것이 핵심이다.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역사상 위대한 종교개혁과 대각성운동은 복음의 재발견에 따른 결과였다. 로이드 존스가 “부흥”에서 말했듯이, 죽은 정통 (dead orthodoxy)에서 산 정통 (live orthodoxy)으로 가는 것이 곧 부흥이다. 모든 교리가 다 맞고 모든 지식을 다 가졌고 모든 실천을 다 하지만 죽은 정통이 있다. 그것은 회심이 없고 변화가 없는 교회이다. 새로 믿는 사람들이 생기고 마음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고 삶의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이다. 살아 있는 정통은, 곧 복음을 개인과 공동체가 자신들의 마음밭에서 재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일상언어로 복음을 표현하기 시작하며, 자신들의 일상의 삶에서 – 가족, 친구, 학교, 직장 – 복음의 진리를 따라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초대교회 때에도 정통신학과 말씀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바리새파 사람들, 살아있는 성전 예배를 드린다고 주장하는 사두개파 사람들, 세상 등진 탁월한 영성을 가졌다는 에세네파 사람들, 올바른 사회적 실천과 국가적 봉사를 한다고 믿는 급진당 사람들이 다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었고, 예수님과 제자들은 은혜의 복음을 제시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며, 모든 불경건을 버리게 한다. 결국 복음의 재발견이 교회를 시대마다 새롭게 했다. 칼빈의 종교개혁이나 마틴루터의 이신칭의나 존 웨슬리의 갈라디아서 서문 사건이나 조나단 에드워즈의 각성운동이나 모든 참된 부흥의 근간에는 하나님의 은혜의 원리에 의한 죄인된 인간의 구원 - 즉 은혜의 복음에 대한 새로운 각성과 헌신이 있었다. 역사를 바꾼 지속적인 위대한 종교개혁과 부흥의 시기에는 반드시 은혜의 복음, 이신칭의의 복음에 대한 깊은 각성들이 있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은혜의 복음이 온전하게 소통되며, 받아들여질 때에 교회가 세워지게 하신다.

지금이야말로, 복음 자체의 능력에 천착하며, 복음 자체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신뢰해야 할 때이다. 지금이야말로, 조직이나 자금이나 제도 같은 외부요인이 아니라 복음 자체의 재발견과 능력으로 전도하며 제자도를 세우며 교회를 세울 수 있는 절호의 때이다. 지금이 그리스도교의 위기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우리가 복음에 헌신하느냐, 아니면 복음의 결과물 또는 복음의 축복에 헌신하느냐를 분명히 할 때이다. 자기를 스스로 점검하고, 복음의 결과물이나 복음의 열매가아니라 복음의 메시지와 내용 자체에 헌신할 때에 주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친히 세울 것이다. 우리는 복음 자체 곧 주님의 진리의 기둥과 터 위에 굳게 서서 복음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회심과 헌신과 회복을 일으키는 전도, 제자도, 기도의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